#1
기자가 된 이후로 매일같이 기사를 썼다. 내 이름이 달린 기사가 세상에 나간다는 게 처음에는 기쁘다가도 문득 두려워졌다. 이미 나간 기사는 쉽사리 수정할 수도, 마음대로 삭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빠르게 아이템을 찾고, 빠르게 기사를 작성하고, 빠르게 후킹할 수 있는 제목을 뽑아내고... 기사를 쓰는 모든 과정이 마치 속도 싸움 같았다. 그러니 일을 하는 매일, 매 순간이 마감에 시달리는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한 듯했다. 그 속에서 긴 호흡을 가진 문장을 찾아내는 것은 좀처럼 어려웠다. 종종 내가 쓴 기사를 다시 읽어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때도 있었다. 내가 쓴 문장들은 때론 내게 부끄러움을, 때론 내게 기쁨을 남겼다.
12월의 어느 날 나는 문득 뉴스레터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자세한 계획 따위는 정해두지 않았다. 노트북을 켜 뉴스레터 플랫폼에 가입하고 사용법을 손에 익혔다. 회사 동료가 내게 ‘유진 씨는 참 다정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나 뉴스레터의 이름을 ‘다정’이라 지었다. ‘정이 많다’는 뜻의 ‘다정’. 정 없이 못 사는 내게 딱인 네이밍이었다.
#2
그렇게 기사와는 다른 긴 호흡의 글을 꾸준히 써보고자 만든 뉴스레터였지만, 결국 발송을 몇 시간 앞둔 지금에서야 분주하게 글을 쓰고 있다. 스스로 정한 마감일에 또다시 쫓기고 있는 셈이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잠시 멍을 때리니 ‘매일이 마감이라면’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뉴스레터 마감 일주일 전부터 제목을 고민했지만, 정말이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마감을 앞둔 지금, 이상하고 제멋대로인 문장들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만만하게 써 내려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 이것이 마감의 힘이다.
#3
돌이켜보면 나는 꽤나 자주 마감의 힘을 빌렸다. 대학생 때는 공모전 마감일을 앞두고 학과 과방에서 자주 밤을 지새웠으며, 영화배급사에서는 영화 개봉일이라는 마감에 시달렸다. 그뿐이랴. 광고대행사에서는 광고와 화보의 릴리즈일을 기점으로 모두가 폭주기관차처럼 달려나가고 있었다. 언론사 역시 각개전투일 뿐, 각자의 마감시간을 지키기 위해 정신이 없다. 새삼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마감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구나 깨달았다.
#4
결국 마감을 무사히 지킨 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해 줄 만한 일이 아닐까. 당장의 대단한 성과는 없어도 매일의 마감이 나를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일에서의 마감뿐만 아니라 사고 싶었던 물건을 월급일에 구매하는 일, 하고 싶었던 취미를 실행에 옮기는 일, 가고 싶었던 장소에 부지런히 찾아가는 것 역시 스스로 생각해둔 일에 마감일을 부여하고 꾸역꾸역 지켜내고 있는 것들이었다.
아마도 이 생이 끝날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마감일에 시달릴 것 같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신나게, 그리고 지치지 않게 마감을 맞이해나가고 싶다.